
롱블랙 프렌즈 K
신의 한 수. 바둑에서 판세를 단숨에 뒤집는 절묘한 수를 뜻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세돌 전 바둑 기사. 2001년 19살의 나이에 32연승을 거두며 ‘불패소년’으로 불렸고, 21살에는 ‘신산神算’*이라 불리던 이창호 9단을 꺾으며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신이 내린 계산력’이라는 뜻.
서른셋이던 2016년에는 수천만 수의 기보를 학습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에 맞서 인류 최초의 1승을 거두었습니다. 역사가 쓰인 순간은 4국에서 둔 백 78수. 무려 0.007%의 확률*을 뚫은 ‘신의 한 수’였어요.
*구글 딥마인드의 분석. “알파고가 그 수를 둘 확률은 약 1만분의 1 확률”이라 말했다.
그런 이세돌이 최근 자서전 『이세돌, 인생의 수읽기』를 펴냈습니다. 은퇴한 지 햇수로 9년 만에요. 인공지능의 시대라는 지금, 그의 인생을 톺아보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발로 바둑판을 뚜벅뚜벅 걸어 나간 전설의 바둑기사. 그가 두어온 인생의 수들에 복기를 청했습니다.

이세돌 전 프로 바둑 기사 / 현 유니스트 특임교수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해진 9월의 어느 날.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어요. 깔끔한 수트 차림의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인사를 건넸어요.
‘어쩐지 과묵할 것 같다’는 생각과 달리 그는 많이 웃었고, 많이 말했어요. 올해부터 시작한 교수 생활을 이야기할 땐 “이제 개강”이라며 괴로워하기도, 골똘히 생각할 때는 왼손으로 턱을 괸 특유의 자세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4시간가량 나눈 대화는 바둑에서 인공지능으로, 자연스레 사회 영역으로 뻗어나갔어요. 다만 기저에 흐르는 메시지는 하나더군요. ‘나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바둑은 결국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행위입니다. 다만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너무 빨리 만들면 좁아져 버리고, (세계를) 너무 넓혀도 감당이 안 되거든요. 그러니 적당한 시점에, 자신만의 바둑을 완성해야 하죠.”
이세돌의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또, 자기만의 바둑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Chapter 1.
21살, 우승과 슬럼프를 함께 얻으며 배운 것
이 교수는 1983년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바둑을 즐겨 하던 아버지는 모든 자녀에게 바둑을 가르쳤죠. 그 역시 네 살부터 바둑돌을 손에 쥐었습니다.
천부天賦. 하늘이 내린다고 하죠. 그의 재능은 일찌감치 도드라졌습니다. 대국 상대는 머리 하나씩 더 큰 형들이었어요.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손을 잡고 서울로 향했어요. 12세 나이에 한국기원 소속 프로에 입단합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서울에서 홀로 지내는 게 외롭진 않았을까요. 그는 “어른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프로의 세계가 좋았다”고 합니다. 이런 시간은 ‘자기만의 바둑’을 만드는 주춧돌이 되었죠.
몇 년간은 놀기만 하기도 했고, 본선에 올라가고 싶어 하루 종일 바둑판을 앞에 둔 날들도 있었어요. 어린 이세돌이 이 시간 속에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바로 ‘상식과 효율’의 가치. 지금까지도 그가 인생의 중요한 키워드로 삼고 있죠.
“바둑이라는 게 앉아 있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반복 훈련도 한계가 있고. 그때부터 효율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바둑이라고 매 순간 집중력을 100%로 쓰지 않아요. 무한한 자원이 아니니까요. 처음부터 100%로 쓰면 방전되죠. ‘내 집중력은 어느 정도니까 여기서는 30%만 쓰고, 중요한 부분은 100%로 가자.’ 이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