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전 갈수록 역사책 읽는 게 좋아집니다. 어려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오래 전 사건들이 지금은 제 일에 영감을 주는 교과서가 되고 있어요.
역사를 좋아하게 된다는 얘기를 했더니, 금동우 소장님이 일본 장수 기업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글쎄, 일본에는 100년이 넘은 기업이 3만3000개 이상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200년이 넘은 기업도 1340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 기업의 역사만 되짚어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해요.

금동우 한화생명 동경주재사무소장
일본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일본어로 ‘시니세(노포, 老舖)*’라고 하죠. 올해에만 2900여개 기업이 100주년을 맞았어요. 1000년이 넘는 곳도 10곳이나 됩니다. 한국에선 1897년 설립된 동화약품과 신한은행이 가장 오래된 기업입니다. 이와 비교하면 정말 장수 기업이 많은 거죠.
*원래 오래 된 음식점이나 가게를 뜻하지만, 100년이 넘은 장수 기업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수백 년 동안 어떻게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요. 오늘은 519년 된 화과자 회사 토라야とらや를 통해 장수 기업의 비결을 엿볼까 합니다.
Chapter 1.
토라야 : 일본을 상징하는 화과자 브랜드
토라야는 일본의 상징적인 화과자 브랜드입니다. 1501년 교토에 문을 연 작은 과자점에서 출발했습니다. 지금은 일본에만 83개의 지점, 9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어요. 프랑스 파리와 말레이시아에도 지점을 두고 있고요.
519년의 역사에도 토라야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화과자집은 아닙니다. 역사가 1021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치몬지야 와스케라는 화과자집이 있습니다. 하지만 규모와 명성까지 고려한다면, 토라야는 단연 대표 브랜드입니다.
단순히 오래 살아남아 유명한 건 아닙니다. 토라야는 일본 왕실에 납품하는 유일한 화과자입니다. 일본 메이지明治 왕이 막번 체제를 무너뜨리고 1869년 도쿄로 천도할 때 토라야에 “도쿄로 본점을 옮기면 어떠냐”고 제안을 할 정도였어요. 그만큼 대표성이 있는 회사입니다.
2020년 기준 토라야의 화과자 매출은 144억3000만엔(약 1500억원)입니다. 한국 5위 제과회사인 농심켈로그의 같은 기간 매출이 1950억원이니, 규모가 짐작되시죠. 화과자만으로 적지 않은 규모를 일군 겁니다.
토라야의 대표 제품은 양갱입니다. 팥과 한천, 설탕을 섞어 끓인 뒤 굳힌 디저트죠. 토라야의 양갱은 독특한 설탕을 쓰는 걸로 유명합니다. 일본에서 난 세 가지 설탕을 구분해 제품마다 달리 써요. 결정이 큰 고순도 설탕 시로자라토, 미세한 입자와 깔끔한 뒷맛이 특징인 와삼본, 미네랄이 풍부해 깊은 맛이 나는 고쿠토 같은 식이죠. 설탕에도 이렇게 다양한 종류와 맛이 있다는 건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양갱은 밤·유자·고구마 등 다양한 재료로 각기 다른 맛을 냅니다. 제철에 나오는 재료를 쓰기 때문에, 언제나 같은 제품을 맛볼 수는 없어요.
일본 전통 과자인 화과자도 핵심 메뉴입니다. 팥과 밀가루·쌀가루를 섞어 반죽한 뒤 손으로 정교한 모양을 빚고 쪄서 만들죠. 화과자의 모양은 계절에 따라 바뀝니다. 봄에는 벚꽃, 여름엔 연못 속에 헤엄치는 금붕어, 가을엔 단풍, 겨울엔 눈송이 사이로 엿보이는 어린 풀을 담아내는 식이죠.
토라야의 과자는 비싼 편이에요. 어른 손가락 두개를 합친 정도의 미니 양갱이 7개 한세트에 2000엔(2만1000원)이에요. 한개에 3000원인 셈입니다.

Chapter 2.
운영 : 17번의 가업 승계, 과자 제조 노하우를 발전시키다
토라야의 창업자는 구로카와 엔주입니다. 처음엔 양갱 가게로 출발했어요. 양갱은 원래 양의 피와 고기를 굳혀 만든 청나라 음식입니다. 일본은 육식 문화가 생소해 팥·밀가루·칡가루를 섞어 양갱을 만들었죠. 차 문화를 즐기던 다이묘(지방 영주)나 귀족들이 양갱을 즐겼습니다. 구로카와 엔주는 황실에 양갱을 납품하게 됩니다.
토라야는 5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가업을 승계했습니다. 지금 경영을 맡고 있는 구로카와 미쓰하루 사장은 18대에요. 일본에 장수 기업이 많은 건 이런 가업 승계 문화가 결정적입니다. 기업이 보통 크게 흔들릴 때가 경영권이 불안정할 때잖아요.
여기서 토라야만의 가업 승계의 철칙이 있습니다. 가문 중에서 한 사람만 경영에 참여한다는 겁니다. 보통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는 형제·자매가 함께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다 더 많은 권력을 쥐려고 서로 다투기도 하고요. 이런 다툼을 막기 위해 원칙을 정한 거죠.
가업 승계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일본의 오래 된 기업을 보면 가업 승계가 장점을 발할 때도 있습니다. 일단 후계자 교육이 확실합니다. 어려서부터 가업의 사명을 주지하고, 핵심 역량을 키우는 경우가 많죠. 누가 경영권을 쥘지를 놓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없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대를 이어 과자를 만들다보니 갈수록 과자 제조의 노하우도 발전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양갱에 적합한 흰 팥을 찾아낸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흰 팥은 붉은 팥보다 식감이 부드럽고 텁텁함이 덜해요. 그런데 재배가 까다로워 보통의 화과자는 붉은 팥을 많이 씁니다.
토라야는 일본 군마현·이바라키현이 흰 팥을 키우기에 좋은 날씨라는 걸 찾아냈습니다. 지역 농가와 계약을 맺고, 산지에 직원들을 보냈어요. 이 직원들은 농사를 함께 지으며 재배 기술을 끌어올리고 품종 개량을 고민했습니다. 결국 2018년 2월 토라야는 농림수산성에 자체 품종의 흰 팥 ‘후쿠토라 화이트’를 등록합니다. 사기업 최초로 팥 브랜드를 만든 거예요.
Chapter 3.
변화 : 역사적 혼란을 빠른 변신으로 극복하다
말이 500년이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을까요. 토라야 역시 역사적 혼란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조직문화를 다잡고, 재빠르게 피봇팅도 했습니다. 오래 된 기업이 마치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움직인 겁니다.
1788년 교토 대화재가 일어났습니다. 도시의 절반이 화재에 휩싸였죠. 토라야의 양갱 가게 역시 전소되었습니다. 9대 구로카와 미쓰토시 사장 때의 일이죠. 미쓰토시 사장은 불타 없어진 가게 자리에 임시 가게를 세웁니다. 그리고 직원들을 불러 새로운 행동 강령을 전파합니다. 이 강령들은 ‘토라야 15 정서掟書*’라고 불립니다. 직원들은 모두 이 강령을 외우게 했죠. 그 중 일부를 들려드릴게요.
*규정이 담긴 문서
-손님을 뵈러 갔을 때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정중히 공경하는 자세로 대하고 용무가 끝나면 즉시 돌아온다.
-사람이 보든 안 보든 손과 입을 항상 깨끗하게 씻는다.
-각자 특기를 갖도록 노력하고 무엇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잘 가르친다.
-놀 때는 확실하게 논다.
대화재로 가게가 사라진 혼란기에, 왜 이런 행동 강령을 세웠을까요.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직원의 마음가짐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는 게 미쓰토시 사장의 생각이었을 겁니다. 이 때문에 토라야는 직원들의 태도가 단정하고 위생이 철저한 과자집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토라야는 전통의 과자집이지만 전통만 고집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1869년 일왕의 권유에 과감히 본사를 교토에서 도쿄로 옮길 정도로요.
1950년대에 들어선 화과자 제조 과정 대부분을 자동화 시스템으로 바꿉니다. 감각이 필요한 세밀한 작업에만 숙련된 장인을 투입하죠. 정통 화과자집의 양갱이 공장에서 생산된다니, 뭔가 어울리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철저하게 사업성을 고민해 온 가문이라 오래 살아남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토라야의 역사를 궁금해하는 방문객을 위해 회사는 1982년 ‘토라야 공방’을 남겨뒀어요. 전통 화과자 제조법을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신입 사원에게는 팥을 재배하는 방법부터 화과자 제조·판매를 모두 배우는 ‘연수원’이죠.
Chapter 4.
세계화 : 디저트의 본고장, 파리로 진출하다
‘전통 과자가 언제까지 일본인에게 사랑받을까?’
1970년대 초반. 16대 사장인 구로카와 미쓰사시는 고민에 빠졌어요. 당시 토라야는 백화점에 입접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져 있었습니다. ‘국민 화과자집’으로 자리매김한 거죠. 하지만 1973년 ‘오일쇼크*’가 일어났을 때, 미쓰사시 사장은 불안에 빠졌어요. 이렇게 경기가 위축되다간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겁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이 일어나 중동 산유국들이 원유 가격을 70%씩 인상했다. 전체 에너지의 80%를 석유에 의존하던 일본이 큰 타격을 입었다.
미쓰사시는 해외 진출을 결정합니다. “그냥 도쿄에서 팔자”는 아버지 다케오의 반대에 이렇게 말했대요. “세상이 크게 움직일 때 따라 바뀌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져 버립니다.” 이 말, 멋지지 않나요. 이게 바로 지금까지 토라야를 생존하게 한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라야는 1980년 파리 한복판인 ‘생 플로랑탱Saint Florentin’에 매장을 오픈했어요. 왜 해외의 많은 도시 중 파리를 선택했을까요. 파리는 오래된 건물이 많이 남아있어 교토와 닮았다고 생각했대요. ‘전통 문화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을 거라 믿었어요. 유럽 디저트의 본고장에서, 일본의 대표적 디저트를 선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었겠죠.
“이게 음식이야, 검은 비누야?”
파리지앵들은 화과자를 낯설어했어요. 토라야는 ‘일본 전통의 맛’을 내려고 팥을 일본에서 들여와 썼습니다. 매장에서 직접 팥을 삶다보니, 낯선 냄새가 주민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죠.
이 반응을 접하고 토라야가 보인 행동 역시 과감합니다. 전통에 매달리지 않았어요. 토라야는 일본과 서양의 접점을 생각했습니다. 1984년, ‘요칸(양갱) 드 파리’를 출시합니다. 유럽인들에게 익숙한 우유, 초콜릿, 말린 과일, 커피, 민트 같은 재료를 사용해 양갱 세트를 만든 거예요. 익숙한 맛에 독특한 식감, 자연적인 색깔이 더해져 ‘작고 화려한 동양의 디저트’로 입소문이 났어요.
이런 노력 끝에 토라야는 파리지앵이 알아주는 디저트 맛집이 됐어요. 매장 방문객의 80%가 현지인입니다. 1999년엔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가 매년 선정하는 ‘파리 최고의 맛집 30’ 리스트의 2위에 올랐죠. 2020년엔 프랑스 최고의 마카롱 전문점인 피에르 에르메와 함께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했어요. 파리 진출 40주년을 기념한 콜라보레이션이었죠. 화장품처럼 보이는 우아한 패키징, 분홍·살구 등 화사한 색감의 양갱으로 극찬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성공은 토라야에게 ‘확신’을 주었어요. 화과자도 모양과 맛을 사람 입맛에 맞게 바꾸면, 언제든지 사랑받을 수 있는 디저트가 될 수 있다는 걸요.
“초콜릿이 세계에 퍼진 건, 쓰기만 한 카카오매스에 설탕이나 분유를 더했기 때문이다. 양갱도 입맛에 맞는 재료를 더해 대중적인 과자로 만들겠다.”_구로카와 미쓰하루 사장. 2021. 니혼 신문 인터뷰

Chapter 5.
현대화 : 카페 ‘토라야 안 스탠드’의 성공
토라야는 2003년 카페 브랜드 ‘토라야 안 스탠드(TORAYA AN STAND)’를 런칭했어요. 도쿄의 대표적 힙플레이스 롯폰기힐즈, 오모테산도 힐즈, 아오야마, 요코하마 네 곳에 매장을 냈죠.
이 카페에서 토라야는 다시 한번 파격적인 선택을 합니다. 매장엔 토라야의 대표 메뉴 ‘양갱’이 없어요. 안 스탠드가 집중한 건 ‘팥 앙금’입니다. 젊은이들은 화과자를 왜 먹지 않을까요? 모양이 옛스러워 평소 먹는 디저트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팥앙금은 누구나 좋아하잖아요. 이걸 초콜릿과 배합해 새로운 디저트를 만든 겁니다.
대표 메뉴는 ‘앙 페이스트’입니다. 단팥을 빵에 발라먹을 수 있도록 부드럽게 만든, 스프레드 잼이죠. 회사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화과자 회사가 과자를 안 팔고 속재료를 파는 게 맞냐”는 거였죠. 하지만 앙 페이스트는 실적으로 비판을 잠재웠습니다. 토라야에 거리감을 느끼던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인 겁니다.
안 스탠드를 열며 토라야는 젊은 직원을 많이 뽑았습니다. 자질이 보이면 디저트를 개발하게 하거나, 매장 운영을 맡겼죠. 자유로운 사고로 새로운 화과자를 만들어보라고 독려했어요.
덕분에 새로운 메뉴들이 출시됐어요. 아이스크림 위에 전통 양갱을 올린 빙수, 카페오레에 흰팥을 섞은 음료 등입니다. 지금 안 스탠드의 핵심 고객층은 30, 40대입니다. 토라야의 타깃이 50, 60대였던 것에 비하면 많이 젊어졌죠.
“환경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면 다 된다. 과거의 성공담에 묶이지 마라. ‘본질에서 멀다’고 생각이 들어도, 그건 별로 신경쓰지 않는 편이 좋다.”
_구로카와 미츠히로 회장(17대), 2020년 아사히 신문 디지털 매거진 인터뷰에서
Chapter 6.
마치며 : 500년 토라야가 묻는다, 계속 변화하고 있느냐고
17대 사장이자 지금은 회장을 맡고 있는 구로카와 미츠히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이어져 온 가게가 있다, 라는 말로 화과자를 팔 수 없다.”
전통에 집착하지 않는 열린 사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결단. 이 정신이 이어져 토라야는 500년 넘게 생존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6월 경영권을 물려받은 18대 사장 미쓰하루는 다음 변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쓰하루는 토라야를 ‘자연 디저트’로 브랜딩 할 계획입니다. 갈수록 건강에 신경쓰는 사람이 늘고 있잖아요. 토라야의 과자는 식물성 원료로만 만든다는 것, 화과자의 원재료인 ‘콩’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적극 알리겠다고 해요.
토라야는 해외 진출도 더 적극적으로 준비할 것으로 보입니다. 꼭 일본의 재료와 일본인 직원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는 게 경영진의 생각이에요. 미츠히로 회장의 말을 전합니다.
“화과자가 해외로 진출하려면, 일본의 인력과 재료만으론 한계가 있다. 그 나라의 사람과 식재료를 쓰게 될 거다. 화과자 시장을 키우려면, 열린 생각이 필요하다. 전통 기업이어서, 일본식 과자라서 일본인이 안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은 ‘난센스’다.”
_구로카와 미츠히로, 2020년 아사히 신문 디지털 매거진 인터뷰에서


롱블랙 프렌즈 B
전통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예전의 방식과 예전의 맛을 그대로 지킨다는 것이 전통을 잇는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오늘의 노트를 요약해볼까요?
1. 토라야는 17번의 고용 승계를 탈없이 이어오고 있어요. '가족 중 한 명만 경영에 참여하게 한다'는 원칙을 꾸준히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에요.
2. 토라야는 역사적 혼란 앞에서 빠르게 대처했어요. 교토 대화재로 도시와 가게가 불에 타자 제일 먼저 직원들에게 행동 강령을 전파했죠.
3. 토라야는 파리 진출, 카페 안 스탠드 런칭을 통해 세계화와 현대화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어요. 파리는 화과자의 가능성을 증명했고, 안 스탠드는 젊은 사람들도 토라야를 소비하게 만들었죠.
4. 구로카와 미츠히로 회장은 전통을 이어가려면 '열린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꼭 일본인이, 일본 식재료로 화과자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죠.
롱블랙 피플! 이번 주말에 나들이 다녀온다면, 주변의 오래된 가게나 제품을 유심히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남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지도요. 그럼 즐거운 주말 보내요!